고금을 막론하고 오사카가 자랑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제조사, 조지루시 보온병의 기술.
가전 필수품 중 하나인 ‘보온병‘. 오사카는 일본 국내에서 압도적인 보온병 점유율을 자랑합니다. 일본산 보온병이 탄생한 곳도 다름아닌 바로 오사카입니다. 오래 전부터 오사카는 유리 공업의 중심지였고, 지금도 일본 보온병 산업의 중심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오사카에서 보온병이 탄생하기까지
영국의 과학자인 듀어가 보온병의 원형을 발명하고 그후 독일의 라인홀트 부르거가 가정용 보온병 상품화에 성공하면서 보온병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최초의 보온병은 1908년에 들어온 독일 수입품이었습니다. 최초로 일제 보온병이 탄생한 것은 1912년입니다. 당시 유리 산업을 선도하던 오사카 덴마에는 솜씨가 뛰어난 수많은 유리 장인들이 전구를 제조했는데, 전구 제조는 유리 보온병 제조에 필요한 진공 기술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오사카에서 보온병 기술이 크게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일제 보온병의 여명기
이제 각 가정에 반드시 하나씩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보온병‘. 그러나 일본 국내에서 그다지 사용되지 않아 대부분을 해외로 수출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만들어진 보온병은 대부분 수출용이었습니다(전성기였던 1937년에는 생산량의 90%). 주요 수출국이었던 동남아시아는 수질이 나빠 생수를 그대로 마실 수 없었기 때문에 유럽의 식민지였던 동남아시아에 거주하던 수많은 유럽인은 보온병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해 유럽에서 보온병을 들여오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보온병을 제조한다는 말을 들은 유럽인들이 일본에서 보온병을 수입하게 된 것입니다.
상표의식 자각
이렇게 일본의 보온병이 이국땅에서 각광을 받게 되면서 수출량이 증가함에 따라, 외국이고 언어가 다르니 판매 절차를 보다 원활히 하고 자신들이 만든 제품이 어떤 회사의 어떤 제품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바로 ‘마크‘인데, 요즘 말로 브랜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온병이 이렇게까지 수출되지 않았더라면 조지루시 보온병의 코끼리 마크는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조지루시 보온병 주식회사의 탄생
조지루시 보온병 주식회사는 1918년에 병 제조 업체인 ‘이치카와 형제상회‘라는 이름으로 첫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치카와 긴자부로(형, 銀三郎)와 긴자부로(동생, 金三郎)가 세운 이치카와 형제상회는 히가시구 구조에서 창립되었습니다. 전구 가공 장인인 동생은 동료들과 함께 병을 만들었는데, 동생이 보온병에 커다란 흥미를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형은 보온병을 만들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형이 판매를, 동생이 제조를 담당한 자그마한 시골 마을의 공장이 조지루시 보온병의 전신(前身)입니다. 당시에는 병만 제조했지만 후에 조립 공장을 세워 보온병 도매상으로서 수출을 위한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제까지와는 달리,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보온병 도매상으로서 상표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이때 고안해 낸 것이 바로 현재의 ‘조지루시‘의 기초가 된 ‘상관인(象冠印)‘입니다. 이렇게 “Elephant and Crown”이라는 상표를 등록했습니다. 시대에 따라 코끼리의 표정이나 모습은 다르지만, 누구나 다 아는 이 코끼리 마크는 계승되어 (주)교와제작소, 교와보온병공업을 거쳐, 1961년에 회사의 로고 마크를 표방한 회사명, 조지루시 보온병 주식회사로 변신했습니다.
보온병 제조의 전환기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수출량은 감소한 반면, 일본 국내의 매출이 순조롭게 상승 곡선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요 증가에 반해 당시는 아직 핸드 블론 작업으로 병을 제작하던 시절이라 병 자동 생산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져, 독자적인 자동 제병 장치 개발에 나서게 됩니다. 이 개발은 성공하였고 균질한 병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자 가격도 낮아져 점차 전국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대히트 보온병 상품
보온병 제조는 전쟁으로 인해 한때 중단되었다가 전쟁 후 사업을 재개합니다. 사업 재개 직후까지는 휴대용을 중심으로 제조하다가 탁상형 포트병으로 전환을 꾀하게 되는데, 이때 등장한 것이 ‘핫 펠리컨‘입니다. 머리의 형상이 펠리컨 부리와 닮아 붙여진 이름입니다. 순조로운 매출을 보이며, 1948년부터 1956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출시될 정도로 커다란 인기를 끌었습니다. 핫 펠리컨의 디자인은 서양의 물주전자를 모방한 것인데, 당시의 경영자는 그 정도로 히트한 상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모방해 만들어 파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보온병도 디자인의 시대가 온다!‘. 이에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디자인 경연대회를 열어, 1956년에 “슈퍼 포트‘가 탄생했습니다.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올 블랙 바디였지만,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높은 생산 비용 등이 문제가 되어 히트 상품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독창적인 디자인 중시 상품을 만든다‘는 흔들림 없는 신념이 1963년 대히트 상품인 포트를 기울이기만 해도 물이 나오는 오토 마개 ‘하이 포트 Z형‘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때부터 조지루시 보온병은 업계 최고의 자리로 약진하게 됩니다.
또한 1967년에 꽃무늬 포트가 크게 유행하면서, 밋밋한 식탁을 화사하게 만들어주는 이 제품이 주부들 사이에서 커다란 인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 조지루시 보온병은 일본에서 보온병 생산량 1위를 차지하며 크게 성장했습니다. 경제에 위기감을 느낄 때는 꽃무늬가 잘 팔리지만, 버블 경기 시대에 꽃무늬는 인기가 없는 법. 세상의 분위기가 암울하면 이를 떨쳐내고자 하는 심리가 포트병에도 반영된다니, 참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1973년에는 들어올릴 필요도, 기울일 필요도 없이 버튼 하나만 누르면 물을 따를 수 있는 ‘누르기만 하면 되는 에어 포트‘가 출시되었습니다.
그 후 1983년에는 한눈에 잔량을 알 수 있는 “누르기만 하면 되는 포트 미에~루“가 출시되었습니다. 이 제품도 상당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지금이야 포트의 눈금으로 잔량을 확인할 수 있는 게 당연한 세상이지만, 이렇게 한 기업이 한 걸음 한 걸음 편리성을 추구해 온 것이 우리의 편리한 생활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감개무량한 일입니다.
이렇게 1963년에 발매된 하이 포트 Z형이 대히트를 기록한 이후 계속해서 히트 상품을 세상에 선보이며 확실히 업계 1위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시초는 탁상 포트를 모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순조로운 매출에 안주하지 않고 자체 디자인 개발에 도전한 그 공격적인 경영 자세야말로 조지루시 보온병을 업계 최고의 자리로 끌어올린 원동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영 자세는 현재까지도 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온병 업체에서 생활용품 종합 업체로
진공이 조지루시의 간판 기술이라 한다면, 전기 밥솥 개발은 상당히 커다란 전환기를 맞이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밥을 보온하는 유리 보온병의 보온력이 약해 다음날 뜬내가 나고, 무엇보다 잘 갈라지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이에 ‘좋은 물건은 사용한다‘는 발상의 전환에 따라, 전기 보온 방식을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강력한 판매망을 구축한 거대한 전기 업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게 된 이 신제품 개발은 조지루시의 운명을 건 커다란 도전이었습니다. 이러한 혁신은 진공 보온과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생활용품 종합 업체 조지루시로 전환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보온병 경량화의 시대로
보온병의 병은 유리로 만드는 것이 전통이자 상식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리 말고 다른 소재로 유리병을 대신할 만한 성능을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온병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유리를 대체할만 한 소재의 필요성을 느껴 스테인리스 써모스 기술에 착수했지만, 가격이 유리병보다 훨씬 비싸 당시에는 보급에까지 이르지 못했습니다. 또한 스테인리스제 보온병을 출시하면 유리 보온병을 대체하게 되니 자사 제품의 발목을 잡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한때 개발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타사가 한발 앞서 스테인리스제 보온병을 상품화하게 되었는데, 이는 고품질 제품을 만들게 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1981년에는 “스테인리스 써모스 터프 보이“가 완성되었습니다. 상품의 범위도 확대하여 당초엔 진공층 폭이 3.5mm였지만 슬릿 설계를 도입해 1.1mm 진공층을 실현했습니다. 보다 작고 가볍게 만드는 데도 성공했습니다.보온병이 있으면 페트병이나 종이컵 폐기를 감소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폐기할 때 배출되는 CO2도 줄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실용성이 재검토되는 친환경 시대를 맞이하면서 스테인리스제 보온병의 필요성이 강조되어 주력 상품의 한 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외국에서의 조지루시 상품
세계적으로도 월등히 뛰어난 품질로, 일본이 해외에 수출하는 품목 중에서 상당히 높은 수출률을 자랑하는 상품이 바로 보온병입니다. 생산된 제품 대부분이 외국으로 수출되던 시대만큼은 아니어도 대만이나 서아시아에서는 보온병의 인기가 높습니다. 더욱이 미국에서는 기존의 보온병을 뒤집어 놓은 듯한 디자인이 특징인, 원터치로 커피를 따를 수 있는 ‘미에~루 포트 원터치 VYA형‘의 모델 체인지 제품인 “낙하식 커피 서버“(영어 표기: Beverage Dispenser AY-AE형 및 SY-AA형)가 인기 상품인데, 사무실용 커피(OCS: Office Coffee Service)로서 사무실이나 커피 스탠드의 셀프 서비스용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기술이 바다 건너 전세계 사람들에게도 애용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왠지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앞으로의 조지루시 보온병
조지루시는 보온병 업체에서 생활 종합 업체로 발전하고, 현재는 진공 기술을 활용해 다른 분야와의 콜라보레이션 상품을 개발하는 등 가정용 제품에 머물지 않고 산업용 분야에서도 그 기술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우주 개발을 예로 들어볼까요? 가정에서 우주 분야라니 갑작스럽기도 하지만, 우주 공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보온병을 제작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주 공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보온병이 그렇게 특별한 건지 의문이 생기실 텐데요, 정말 그렇다고 합니다. 얼마나 굉장하냐면 우주 공간의 40G의 충격에도 견뎌낼 수 있는 보온병이라고 합니다. 보통 항공모함에 제트 전투기가 착륙할 때 발생하는 충격이 7G라 하니, 얼마나 혹독한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제작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밖에도 스포츠 분야 제품 개발에도 협력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아테네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한 금메탈리스트 노구치 미즈키 선수의 스테인리스 보틀병을 제작했습니다. 병 하나에 음료용과 몸을 적실 수 있는 물을 함께 넣을 수 있고 온도를 10℃로 유지할 수 있는 엄청난 제품으로, 노구치 선수가 ‘이 병이 날 살렸다‘고 말할 정도도 완성도가 뛰어난 병입니다.
또한 홋카이도처럼 추위가 극심한 곳에서는 겨울에 수도관이 얼기도 합니다. 이에 수도 밸브에 진공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차가운 바깥 공기를 차단하여 한겨울 수도관 동파 방지에도 한 몫 했습니다.
보온병 기념관 견학 후의 즐거움
보온병 기념관을 견학한 후 오사카 덴만구로 가서 ‘유리의 발상지‘라고 적힌 비석을 확인해 봅시다! 역시 보온병 생산은 이곳을 기점으로 발전한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유리의 발상지를 확인한 후엔 오사카 덴만구에 들러 봅시다.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모신 오사카 덴만구에서는 2월이 되면 미치자네가 아꼈던 꽃, 매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시험을 앞둔 학생이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사회인이라면 학문의 신인 미치자네에게 열심히 기도해 보는 것도 좋겠죠.
참배를 마치면 덴만구 바로 근처에 있는 가미가타라쿠고(교토, 오사카에서 창작된 라쿠고)의 정석 “덴마텐진한조테이“로 가봅시다. 만담의 본고장 오사카에서 한바탕 웃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쇼핑이나 기념품으로 참깨 전문점 ‘와다만‘은 어떨까요? 귀중한 일본산 참깨를 사용한 기름이나 참깨를 넣은 맛있는 과자 등, 눈길이 가는 상품들이 아담한 가게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강력 추천!
여기까지 오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으니, 바로 ‘덴신바시스지상점가‘. 이 아케이드 상점가는 직선 거리로 일본에서 가장 긴 길이를 자랑하는 만큼 점포 수도 많고 개성도 넘쳐 흐릅니다.
맛집은 물론 쇼핑도 저렴하게!! 단돈 500엔 쇼핑은 물론이고 100엔 타임 세일을 하는 옷가게도 있습니다.맛집 중에서도 최근 덴신바시스지상점가에서 가장 핫한 음식은 바로 붕어빵!! 얇은 피에 팥을 듬뿍 넣은 붕어빵 가게들이 있어 한입 베어물며 쇼핑을 즐길 수 있습니다.